■ Issue Point
▶ [About movie]
밥 말리, 그리고 레게의 탄생
Robert Nesta Marley 1945~1981
“빈민촌, 부촌을 두루 겪은 흑과 백의 혼혈로 모든 게 결합됐잖아요.
밥은 그 모든 걸 한 몸에 나타냈죠!”
1945년 50대인 백인의 영국 아버지와 10대인 흑인의 자메이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자란 밥 말리는 조 힉스(Joe Higgs)의 영향으로 그 시절 사랑 노래뿐이었던 자메이카에서 벗어나 빈민가
사람들을 옥죄고 있던 극단적인 소외감 등 금기시 되었던 주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밥 말리는 그룹‘웨일 럭스’로 활동을 시작했다. 자메이카에 서서히 퍼진‘스카’(ska)’비트를 사용했고, 후에‘락 스터디’(Rock
steady)까지 접목한 음악인‘레게’(Raegge)를 전 세계에 소개하였다. 지금까지 밥 말리는 레게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뮤지션으로
손꼽히고 있다.
밥,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시작이라…. 울음. 그래요. 울음과 함께 시작되었죠.”
수난자들의 통곡과 울부짖음을 문화현상으로 끌어올린 라스타 패리(Rastafari) 운동과 자메이카의 공동체, 그리고 스스로 겪은 가난의
고통과 혼혈로 성장하며 느낀 소외감, 차별 등이 밥 말리의 음악의 소재가 되었고, 밥 말리는 레게 음악을 통해 열정과 희망과 저항정신,
정의를 전했다.
■ 줄거리
자메이카 출신인‘밥 말리’는 레게 음악의 전설이자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1945년 2월 6일 자메이카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때 첫 녹음을 시작하며 뮤지션으로 데뷔했다. 그 다음 해인
1963년 그는 버니 리빙스턴, 피터 토시와 함께‘웨일 럭스’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밥 말리의 음악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흑인 해방 사상을 표방한 신흥종교인 라스타 파리 안교(Rastafarian)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웨일러스활동을하던중밥말리는 1972년
영국의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다.
그는 등 민중을 핍박하는 사회 현실을 비판한 곡들이 수록된 두 번째 앨범(Natty Dread)를 발표하면서
흑인 민중의 행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있는 그를 자메이카 정부가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1976년
자메이카 총선을 앞두고 인민국가 당을 지지하는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던 중, 밥 말리는 아내와 매니저 그리고 자신의 팔이 크게 다치는 총기
테러를 당한다. 그 사건으로 2년 동안 그는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보낸다. 1978년 내전 상태에 돌입하려는 자메이카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평화콘서트에 참여해 앙숙이던 두 정치 지도자인 인민국가 당의 마이클 만 리와 자메이카 노동당의 에드워드 시가의 화해를
주선한다. 대립 중이던 두 지도자의 손을 맞잡은 밥 말리의 사진은 아직도 유명하다.
는 자메이카 나아가 핍박받고 있던 아프리카
민중의 권리를 위해 노래를 부른 밥 말리의 생애를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그의 옛 모습을 담은 뉴스클립, 가족과 동료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저항의 아이콘’으로서의 밥 말리가 어떤 사람이고 뮤지션인지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밥 말리’)에 관한 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이 영화가 더 특별한 건,
밥 말리라는 레게 전설이나 신화적 인물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에 사람들을 더 감정적으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지기 말리 (뮤지션, 밥 말리의 아들) |